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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비문 번역과 읽기 | 6 - 인현왕후는 악마, 장희빈은 천사론

입력시간 : 2011-05-28 오후 6: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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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악마론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강래(李康來)는 『삼국사기 전거론』의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 『삼국사기』를 읽던 가운데 그 모순이랄까, 아니면 틈 같은 것이랄까를 발견하고서 얼핏 유혹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 위의 책 머리말 첫 구절

사람들의 통념 속에 이와 같은 틈을 발견하면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한 조각 진실을 발견하면 그 틈에 빨려든다. 그 틈은 캄캄한 동굴 속에 빛이 새어 나오는 한 줄기 틈처럼 유혹적이다.

나는 광개토대왕비문이 왜 번역되지 못할까. 『삼국사기』는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일까.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소중한 무엇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

먼저 사람들의 통념을 깨기 위해서 장희빈과 인현왕후 이야기를 해 보자.

우리에게 알려진 통념은 장희빈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악마요, 인현왕후는 천사이다. 특히 『인현왕후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름처럼 어질고 착한 인현왕후는 악마에게 학대받는 가련한 천사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악마는 인현왕후요, 천사는 장희빈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조건을 대비해 볼 필요가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이렇게 전한다.  

 

인현 왕후

병조판서 등을 지낸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딸로서 1681년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은 후궁 장씨(張氏;희빈 장씨)를 총애하여 왕후를 멀리하고, 장씨가 왕자 윤(昀;뒷날의 경종)을 낳자 윤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였다.

이 문제로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서인(西人)이 밀려나고 인현왕후도 폐위(廢位)되어 궁중에서 쫓겨나 서인(庶人)이 되었다가 1694년의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왕후로 복위하였다. 소생이 없었으며, 능은 경기도 고양(高陽)의 명릉(明陵)이다. 예의 바르고 정숙하였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궁녀가 쓴 소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이 전한다.

 

 

 (인현왕후 ; 착한 척해야 한다)

 

 

 (장희빈의 페르소나는 악마의 눈초리이다)

 

본관은 인동(仁同), 본명은 장옥정(張玉貞)이다. 중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여종이었기 때문에 천인(賤人)의 신분이었다. 삼촌은 역관(譯官)이었으며 무역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재력가였다. 장옥정은 남인의 추천을 받아 궁에 들어가 자의대비전(慈懿大妃殿)의 나인이 되었다.

젊은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사실이 발각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명성왕후가 죽자 장옥정은 다시 궁으로 입궐하여 후궁이 되었으며 인현왕후 민씨와 갈등하게 되었다. 당시 장옥정은 남인 세력이었고 인현왕후는 정치 실세였던 서인을 대표하여 두 사람은 정치적 적대관계였다. 숙종은 오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마침내 장씨와 사이에서 왕자 윤(昀:景宗)을 낳았고 1689년(숙종 15) 1월 윤을 원자로 책봉하였다. 이에 따라 소의 장씨는 희빈에 오르고, 세자책봉은 불가하다고 상소한 서인의 거두 송시열은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으며 나머지 서인들도 유배되어 권대운(權大運) 등 남인(南人)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기사환국 己巳換局). 이 해 5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올리자 서인 박태보(朴泰輔) 등 80여 명이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1694년(숙종 20) 서인의 김춘택(金春澤) 등이 다시 서인의 집권을 위해 남인들을 역모로 고발하였고 마침내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씨를 희빈(후궁)으로 강등시켰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자 희빈 장씨가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神堂)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되었다.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처형되고 곧이어 숙종으로부터 자결을 명령받아 죽음을 당했다.

 

인현왕후는 병조판서의 딸이고 장희빈은 천인의 딸이다. 인현왕후는 한껏 교만하여도 그를 지지하는 송시열등 서인 세력이 있다. 장희빈은 숙종의 사랑 외에는 지지 세력이 없다. 장희빈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 노릇을 할 재주가 없는 것이다. 그녀가 착한 일을 하면 또 꼬리 아홉 달린 여우의 본색이라 한다. 장희빈의 착함을 대변하고자 궁녀가 글을 썼다면 출간 금지는 물론이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지경이다. 그리고 서인들은 끝없는 소문을 만들어낸다. 인현왕후는 착하기 짝이 없는 왕후였다고. 과연 그러한가.

 

생각해 보라.

청렴하기 짝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차명계좌가 있다고 소문을 퍼뜨린다. 아방궁에 산다는 말은 조중동에 나지만 이를 부정하는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끝없이 풍문을 퍼뜨리면 거짓말도 참말이 된다는 신념만이 저들 시물라크르 생산자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멀쩡한 구축함을 몰고 바위섬으로 가다 두 동강을 낸다. 이를 북한이 그랬다고 동네방네 떠든다.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마다 거짓말이 뾰롱나니 이번에는 증인을 내세운다. 미국 호주가 증인이란다. 중국과 러시아는 싹 빼 버린다. 미국은 증인을 서는 대가로 챙겨 먹을 콩고물이 참 많을 끼다. 이참에 고물 무기만 팔아묵을 끼가. 자동차도 쇠고기도 배터지게 챙기자.

긴장을 조성하면 지지도가 올라간다. 한 번 더해 먹자. 연평도에서 사격 훈련을 하라. 북한에서 대응사격만 해 주면 효과 만땅이다. 그리고 드르륵드르륵 갈겨 댄다. 어, 쟤들이 진짜 쏘네. 그리고 악마 북한을 김일성 삼대세습까지 돋구어서 삶아먹는다. 연평도의 눈물을 방영하라. 순진한 국민들이 악을 쓰면서 흥분한다. 해병대 노병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총을 달라고 한다. 영화 배우, 가수, 코메디언 등, 그들 중에서 머저리들은 덩달아 깨춤을 춘다. 우와 효과 만땅이다. 이라마 되는기네. 쥐박이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이제 겁도 없다. 등시 같은 국민들을 협박까지 한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숙종(1674 ~ 1720)은 누구인가. 조선 19대왕. 이름은 순(焞). 현종의 아들이다. 대동법을 시행하고, 양란으로 피폐해진 농경지를 옥답으로 만든다. 국토를 넓히어서 백두산정계비를 세운다. 참 잘한 일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죽여 버린 거다. (나는 송시열과 동성동본이다) 무엇보다 잘한 일은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한 일이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는 일이 조야의 여론에 불을 붙이는 것임을 몰랐을까. 만난을 무릅쓰고 밀어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 송시열까지 죽여 버릴 정도로 단호했던 것은 젊은이의 무모한 용기였을까. 아니다. 그가 사랑한 조선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함이렷다. 왕후장상에 씨가 없다는 것을 그 스스로 보여 주었다. 그래서 희빈 장씨의 아들이 20대 조선왕 경종이 되고, 무수리 숙빈 최씨를 범하여 21대 조선왕 영조로 만드는 초석을 닦는다. 임진왜란 때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던 양반 놈들이 희빈 장씨를 폐하게 만들었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이 판소리 『춘향가』를 만든다.

 

생각해 보라. 판소리는 천사 장희빈을 악마라고 입버릇처럼 떠드는 양반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었던 한이 터져 나온 거다. 장희빈을 영원히 희빈 장씨로 모시지 못한 한을, 송시열 같은 양반을 죽여 버리지 못한 한이 서린 절규였다. 그래서 그들은 악마 변사또(송시열)가 춘향(장희빈)을 겁간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정의와 분노를 담아 목청껏 저주의 노래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도령(숙종)을 잊지 못하였다.

 

E.H.Carr은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적 사실들이 어떤 배경 하에서,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연구이지, 역사에 대한 가치판단은 아니다.

인현왕후가 악마이고 장희빈이 천사였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E.H.Carr의 말대로 두 사람이 놓인 처지와 상황을 비교해 보았을 뿐이다. 장희빈은 악마성을 발휘할 처지가 아니었으며, 착하였다고 하여도 그 누구도 그녀를 위해 착함의 소문을 퍼뜨리지 못하고 죽었다는 점만은 사실이다. 단지 궁 안에 장희빈이 神堂을 만들고 인현왕후가 죽어라 죽어라고 해서 인현왕후가 죽었다는 무고만 전한다. 서인들, 그 중 송시열(1607-1689)은 나의 조상이다. 나이 여든을 넘긴 놈이 아녀자를 모함하였으니 사약을 마셔도 싸지 않은가. 더러운 놈.

 

 

이강래 교수처럼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역사의 틈을 엿보자.

 

 

사진 출처 ;

http://cafe.naver.com/hankookhistor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76

 

 

자 이제 김부식을 찾아가 보자. 김부식은 『고기』와 『구삼국사』라는 책으로 『삼국사기』를 쓸 때 회칠만 하였다고 소문이 난 자이다. 이거 뭐 김부식을 위해 변명을 하는 것은 드라마에 푹 빠진 아줌마들 앞에서 장희빈을 변명하다가는 홍두깨로 얻어맞으면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할 말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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